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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천문학

아라비아 천문학

by 녹스연구소장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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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아리바아, 이슬람문화의 천문학이다.

 

아라비아 제국의 천문학은 '이슬람 천문학', '아랍 천문학'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며 시기적으로는 7~8세기경부터 13세기 중기 몽골족이 서아시아를 점령했을 때까지이며, 때로 그 이후 일정 기간이 포함하기도 한다. 이슬람 천문학은 선인들이 남긴 방대한 천문학 유산을 기반으로 성립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페르시아, 심지어 인도의 천문학을 모태로 삼는다. 이 기간 동안 이슬람 천문학은 바그다드 학파, 카이로 학파, 서아라비아 학파 이렇게 세 학파로 형성되었다. 

  아라비아 천문학은 서양의 시스템에 속한다. 아라비아 국가가 출현하기 전, 우마이야 부족 중 일부가 비잔틴 제국의 군인이 되었는데 그중에는 문관으로 활동하면서 그리스 문화를 익히기도 했다. 서기 661년, 우마이야 부족은 시리아를 통일하고 다마스쿠스에 수도를 정했다. 이들은 이후 계속해서 판도를 확장하여 거대한 우마이야 왕조(661~750)가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천문학의 유산을 직접 수용했다. 그들은 훌륭한 천문학자를 모았고 서기 700년 다마스쿠스에 천문대를 세워 아라비아 천문학 발전에 튼튼한 기반을 만들었다. 

  8세기 중반, 아바스 왕조가 출현하여 바그다드에 수도를 정했다. 이로써 바그다드는 점차 세계 천문학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아바스 왕조는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천문학의 유산을 받아들였고, 우수한 과학자를 모아 인도와 고대 그리스 천문학 서적을 번역하도록 했다. 아바스 왕조의 제7대 칼리파('뒤따르는 자'라는 뜻의 아랍어로 무함마드가 죽은 후 이슬람 공동체나 이슬람 국가의 최고 지도자 또는 최고 종교 권위자가 갖는 칭호이다.)인 알 마문은 서기 828년 바그다드에 '지혜의 궁'을 세우고 대대적인 번역 사업을 시행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명저 <알마게스트>가 바로 이 시기에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829년, 알 마문은 바그다드에 천문대 건립을 명령했다. 이후 바그다드는 점차 천문학의 중심지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바그다드 학파가 출현했다. 아부 마샤르는 바그다드 학파를 이끈 중심인물이다. 그는 바그다드 천문대 건설을 지휘했고 경도의 차가 1도일 때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하기도 했다. 그는 저서 <역수서>에서 수성과 금성의 위치를 계산할 때 이들은 태양의 위성으로 간주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의 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제시한 체계와 비슷하다.

  천문학자 알 파르가니는 <천문학 개설>을 발표했는데, 이는 사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를 알기 쉽게 풀어쓰고 축약한 책으로 아라비아 천문학의 탄생에 크게 공헌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세차 상수'가 백 년마다 1도라고 생각했지만, 티비트 이븐쿠라는 중국 이외 천문학자로는 최초로 이 값이 1도보다 크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황도-적도 교차각(적도 평면과 황도 평면 사이의 끼인각)을 23도 35분으로 관측했는데 이 값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측정한 23도 51분보다 더 정밀하다. 그러나 쿠라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관측 결과가 부정확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황도의 교점이 황도의 서쪽으로 이동할 뿐 아니라 반지름이 4도이고 주기가 4,000년인 작은 변화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제시한 '진동이론'이다. 당시 대다수 아라비아 천문학자들은 그의 이론을 '아라비아 천문학의 쾌거'라며 높이 평가하고 받아들였지만, 사실 이는 잘못된 이론이었다.

  909년, 아프리카의 튀니지와 이집트에 독자적인 이슬람 국가인 파티마 왕조가 들어섰다. 이 왕조는 10세기말 카이로로 수도를 옮긴 뒤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강국으로 떠올랐다. 특히 알 하킴 칼리파의 통치 기간에 카이로 학파를 대표하는 천문학자 이븐 유누스는 지난 200여 년간의 천문 관측 기록을 토대로 <알 하킴 역표>를 완성했다. 또 정투영 방식으로 구면삼각함수 문제를 풀기도 했다.

  이븐 유누스의 천재성은 계산의 세밀함과 정확성에서 발휘되었다. 예를 들어 그는 지평선에 투사된 빛이 반사하면서 생기는 오차에 주목했고, 관측 대상 물체의 각거리 40'을 최초로 산출해 냈다. 그는 30회에 걸친 월식 관측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매우 정확하고 신뢰도가 높았으므로 이후 근현대의 천문학자들, 특히 시몬 뉴컴이 달의 장기 가속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이 밖에도 이븐 유누스는 춘분점과 추분점을 7회, 하지점을 1회 관측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이들 자료는 달이 지구를 공전할 때 가속도 운동을 한다는 점과 지구의 자전속도가 불규칙하게 변화한다는 것을 연구하는 데 소중하게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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